안개꽃 한 단을 다 다듬다가 손가락이 좀 얼얼해졌다

안개꽃 한 단을 다 다듬다가 손가락이 좀 얼얼해졌다

꽃시장에 다녀오면 왜 항상 뒷수습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 갑자기 꽃이 좀 보고 싶어서 새벽에 서둘러 꽃시장에 다녀왔다. 원래는 프리지아나 좀 사 올까 했는데, 막상 가보니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안개꽃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안개꽃 하면 그냥 꽃다발 구색 맞추는 용도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또 하얗고 몽글몽글한 게 따로 봐도 꽤 예뻐 보이더라. 가격은 한 단에 만 원 중반대였는데, 막상 사 와서 신문지를 풀어보니 양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거실 바닥에 앉아서 꽃을 다듬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잎사귀 하나하나 떼어내고 줄기를 사선으로 자르다 보니 허리가 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꽃다발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노동이 심하다

친구 두 명한테 선물할 꽃다발을 만들 생각으로 리시안셔스 연핑크랑 스타티스 연보라색도 같이 섞어봤다. 리시안셔스랑 스타티스, 그리고 안개꽃 조합은 사실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라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조합이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꽃들을 적당히 예쁜 모양으로 묶는 게 손에 익지 않아서 한참 걸렸다는 점이다. 꽃대들이 자꾸 미끄러지고, 안개꽃은 또 왜 이렇게 부피가 큰지.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새벽에 사 온 꽃이 오후가 되기도 전에 조금씩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과적으로는 그럴듯하게 완성됐는데, 만드는 내내 ‘아, 그냥 꽃집에서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직접 포장지까지 골라서 선물하니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악양둑방이나 다른 곳에서 봤던 풍경이 생각났다

꽃을 만지다 보니 예전에 여행 갔을 때 함안 악양둑방에서 봤던 꽃밭 생각이 났다. 거긴 정말 끝도 없이 꽃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때 본 안개꽃은 화분이나 꽃다발에 있는 거랑 느낌이 아주 달랐다. 남강을 따라 7km 넘게 이어진 그 길을 걸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는데, 이렇게 집에서 한 단씩 쥐고 있으니까 그때의 그 평화로움이 그리운 건지 아니면 그냥 꽃 냄새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꽃이라는 게 금방 시들어버리니까 허무할 때도 있는데, 이번에 산 안개꽃은 말려도 예쁠 것 같아서 일단 거실 창가에 두기로 했다.

생각보다 뒷정리가 더 고역이다

꽃다발 두 개를 만들고 나니 거실 바닥이 온통 줄기 조각이랑 잎사귀 잔해로 엉망이 됐다. 물병에 꽂아둔 꽃들은 예쁜데, 내 뒤에 남은 쓰레기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서울 코스요리 식당 같은 데서 주는 예쁜 꽃다발을 받았을 땐 이런 고생은 하나도 몰랐는데, 직접 하려니 확실히 사소한 불편함이 계속 뒤따른다. 특히 안개꽃은 자잘한 꽃송이가 많아서 바닥에 떨어지면 청소기로도 잘 안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테이프로 일일이 찍어내면서 내가 이걸 왜 했나 싶다가도, 창가에 놓인 꽃을 보면 또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게 참 이상하다.

완벽하게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마무리했다

사실 친구들에게 줄 꽃다발 말고도 내 방에 꽂아둘 꽃이 남았는데, 화병을 적당한 걸 못 찾아서 아직도 식탁 위에 그냥 널브러져 있다. 예쁜 편지지에 뭐라고 적어서 같이 줄까 하다가, 그냥 꽃만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편지는 생략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며칠 지나서 꽃들이 시들기 시작하면 또 서운한 마음이 들겠지. 그래도 당분간은 집에 들어올 때마다 꽃 향기가 나서 기분은 좀 나아질 것 같다. 꽃을 관리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건 아니지만, 매일 물이라도 잘 갈아주면 며칠은 더 버티겠지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내일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