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꽃시장에서 충동적으로 고른 화분
작년 봄이었나, 갑자기 거실 분위기를 좀 바꿔보고 싶어서 동네 꽃시장을 서성이다가 잎이 넓고 시원하게 뻗은 화분 하나를 발견했다. 주인 아저씨가 이게 ‘아가베 아테누아타’라고 하시면서 잎 모양이 예뻐서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하셨다. 그때는 이게 무슨 식물인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거실 구석에 두면 멋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가격은 12만 원 정도였는데, 당시에는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 크기면 원래 이 가격인가 싶어서 고민 없이 바로 결제했다. 들고 오는데 생각보다 꽤 무거워서 택시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들 발에 걸릴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무리해서 들고 왔나 싶다.
잎 끝이 갈라지는 이유를 몰라서
집에 들여놓고 며칠은 정말 뿌듯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잎 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색이 살짝 변하는 게 눈에 보였다. 처음엔 물이 부족한가 싶어서 물을 듬뿍 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식물은 다육질이라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오히려 안 좋다고 하더라. 검색해보니 소철이나 관음죽 같은 식물들과는 아예 생육 환경이 다른 모양이었다. 뱅갈고무나무처럼 잎이 넓은 다른 식물들은 물을 자주 줘야 한다고 배웠는데, 아가베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괜히 더 미안해졌다. 물 주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미리 좀 공부하고 살걸 그랬다.
100년에 한 번 핀다는 꽃 이야기에 대한 의문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 아가베가 100년에 한 번 꽃이 피는 식물로 유명하단다. 꽃을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사실 그 글을 보면서 좀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이 녀석이 꽃을 피우려면 100년이 걸린다는 건데, 그럼 나는 평생 꽃을 못 보는 거 아닌가? 사실 꽃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왜 그렇게 희귀하다는 사실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소철이나 스투키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식물들도 다들 각자의 매력이 있는데, 굳이 ‘100년에 한 번’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더 가치가 있어 보이는 건지 좀 씁쓸하기도 했다.
겨울철 냉해 걱정과 좁아지는 거실
가장 골치 아픈 건 겨울이었다. 베란다에 두면 얼어 죽을 것 같고, 거실에 두자니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졌다. 남편은 가끔 거실을 지나다니다가 잎에 툭툭 걸리니까 ‘이거 좀 치우면 안 되냐’고 핀잔을 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잎을 닦아주는데 싶어서 서운한 마음이 든다. 사실 요즘은 스파트필름이나 대나무야자 같은 조금 더 작은 식물들을 들일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아주 조금 든다. 식물을 키우는 게 힐링이 되어야 하는데, 가끔은 이렇게 내 공간을 점령해버리는 것 같아 묘하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가 있다.
여전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 중
지금은 산 지 꽤 지나서 나름대로 우리 집 환경에 적응을 한 것 같다. 잎 끝이 갈라지는 건 이제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들처럼 영양제를 챙겨주거나 화분을 분갈이해줄 때마다 긴장하지는 않게 됐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게 정말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울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잎만 넓히다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지는 모르겠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키우는 건 아니니까, 그냥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지내는 게 가장 마음 편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꽃이 핀다는 소문보다는 그냥 오늘 죽지 않고 잎이 예쁘게 펴 있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