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친구 생일 당일 아침에 급하게 꽃을 알아보게 된 상황
원래는 생일 선물만 준비하고 꽃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작년 생일 때 꽃을 사줬더니 예쁘긴 한데 일주일 지나니까 시들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게 아깝다는 말을 지나가듯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생일 당일 아침이 되니까 뭔가 허전했다. 밥 먹으러 예약해 둔 식당에 빈손으로 덜렁덜렁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이 그려지자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조금 났다. 선물을 이미 사두긴 했지만, 테이블 위에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고 없고의 시각적인 차이는 꽤 크다는 걸 이전 연애에서도 몇 번 겪어봤던 터였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반이었다. 점심 예약은 12시 반인데, 이때부터 마음이 급해져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동네 주변 꽃집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냥 길가에 흔히 보이는 꽃집에 들어가면 바로 풍성한 꽃다발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잘못이 컸다. 대부분의 예약제 꽃집들은 당일 오전에 갑자기 찾아오면 원하는 퀄리티의 생화를 구하기 어렵거나, 이미 예약된 건들을 만드느라 바쁘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동탄 센트럴파크 근처 꽃집들과 예약 주문의 현실
내가 사는 곳 근처인 동탄 센트럴파크 주변에는 의외로 작은 꽃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평소에 지나다닐 때는 예쁜 카페처럼 생겨서 한 번쯤 눈길만 주던 곳들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동탄꽃다발’이나 ‘여자친구생일꽃’ 같은 태그를 쳐서 나오는 가게 서너 군데에 문자를 보냈다. 어떤 곳은 아예 오늘 단체 주문 때문에 당일 워크인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고, 또 다른 곳은 전화 자체를 받지 않았다. 겨우 연락이 닿은 ‘피오레 플라워’라는 곳에서 다행히 점심 시간 전까지는 제작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위치는 센트럴파크 공영주차장 근처라 밥 먹으러 가기 전에 들러서 픽업하기 딱 좋은 동선이었다. 하지만 예약을 확정하려고 가격을 물어봤을 때 속으로 조금 놀랐다. 평소에 꽃을 자주 사지 않다 보니 내 머릿속의 장미꽃 가격이나 일반적인 꽃다발 시세는 몇 년 전에 멈춰 있었던 모양이다. 대충 4~5만 원 정도면 꽤 그럴싸한 걸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생화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사장님의 설명과 함께 기본 구성이 7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8만 원짜리 생화꽃다발 주문과 배송 시간의 어긋남
결국 예산보다 조금 초과해서 8만 5천 원짜리 생화꽃다발로 주문을 넣었다. 계좌이체를 하고 나니 사장님이 원하는 톤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인스타에서 본 파스텔 톤의 분홍빛 장미가 섞인 느낌을 원한다고 대충 캡처본을 보내드렸는데, 오늘 들어온 수입 장미 상태에 따라 완벽하게 똑같이는 안 될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받았다. 이때부터 약간의 찝찝함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서 11시 반이 넘어가는데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없었다. 원래는 12시까지 직접 가서 가져오기로 약속을 했었다. 똥줄이 타서 전화를 걸어보니, 앞서 들어온 대형 생일꽃바구니 주문 배송이 밀려서 포장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고 미안해하셨다. 퀵 서비스로 식당으로 바로 보내줄 수도 있다고 제안하셨지만, 퀵 비용 만 오천 원을 내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차를 몰고 직접 매장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 막상 매장 앞에 도착해보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골목을 두 바퀴나 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마음 편하게 비용을 내고 배송을 시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대형 마트 완제품 꽃다발과 로컬 꽃집 커스텀 제작의 차이
골목길에 비상등을 켜두고 급하게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이 한창 리본을 묶고 계셨다. 기다리는 동안 매장 안에 진열된 다른 예약 상품들을 구경했다. 한쪽에는 3만 원대 조화나 드라이플라워 같은 비교적 저렴한 옵션들도 보였고, 요즘 유행한다는 개업축하문구가 적힌 화분들도 가득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형 마트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파는 2~3만 원짜리 정형화된 꽃다발에 비해, 확실히 전문 꽃집에서 당일 아침에 만진 생화들은 향기부터가 달랐다. 장미꽃의 크기도 마트에서 보던 것보다 두 배는 커 보였고, 유칼립투스 같은 초록 잎사귀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8만 원이 넘는 돈값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성적인 확신이 서지 않았다. 꽃이라는 게 주는 순간의 기쁨은 크지만, 집으로 가져가서 화병에 꽂아두고 관리하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성비와는 거리가 먼 소비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몇 시간 뒤면 시작될 생일 식사 자리에 빈손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는 자기합리화를 할 뿐이었다.
결국 생일 파티 직전에 가까스로 전달하며 느낀 번잡함
우여곡절 끝에 조수석에 시트를 젖혀두고 꽃다발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운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서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트렁크에서 몰래 꺼내 뒷짐을 지고 있다가 식당 테이블에 앉으며 슥 건넸더니, 여자친구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고서야 오전 내내 겪었던 피로감이 조금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꽃 사지 말라니까 왜 샀어?”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수십 장 찍는 모습을 보니 돈을 쓴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그 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화병에 옮겨 담는 여자친구의 옆모습을 보면서, 다음 생일에는 진짜로 생화 대신 실용적인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피차 덜 번거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매번 꽃을 준비하는 과정은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비슷한 긴장감과 사소한 짜증을 동반하는 것 같다. 다음번에는 미리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해두든지, 아니면 꽃 말고 다른 대체제를 확실히 정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내년 이맘때쯤 되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 내 모습이 뻔히 그려진다.
동탄 꽃집들 지나다니면서 생각해보니, 꽃은 진짜 예약해야 하는 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