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 입구부터 복도까지 화분이 길게 늘어섰다. 동료가 승진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나서부터다. 원래는 한두 개 정도 오가던 게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꽤 여러 곳에서 축하 인사를 담은 난 화분이 배달되어 왔다. 강릉 교동 꽃집에서 왔다는데, 리본 문구에 적힌 이름들을 보니 사회생활이라는 게 참 복잡하구나 싶었다. 사실 처음에는 꽃이 들어오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화사해져서 좋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상황이 좀 달라졌다. 잎이 하나둘씩 처지기 시작하더니, 화분 받침대에 물이 고여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난초를 관리한다는 것의 무게
사람들은 흔히 개업난이나 승진 화분을 받으면 축하의 의미라고 좋아하지만, 막상 이걸 끝까지 잘 키우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일단 난초라는 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흙이 말랐을 때 적절히 물을 줘야 하는데, 바쁜 와중에 그걸 챙기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은 통풍이 잘 안 되는 구조라, 어제는 호접란 잎 하나가 노랗게 변한 걸 보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예전에 누군가 ‘개업난은 1년 지나면 다 죽는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가격대를 대충 찾아보니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는 줘야 번듯한 게 오던데, 그 돈이면 차라리 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왜 다들 난을 보내는 걸까
궁금해서 좀 찾아봤더니, 동양란 같은 건 잎이 위로 쭉 뻗어서 발전이나 기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보관하는 입장에서는 꽤 애물단지다. 술집 개업이나 작은 가게를 열 때도 다들 난 화분을 보낸다. 예전에 뉴스에서 이봉원 씨가 개업난을 50개나 받았다고 하던데, 그 많은 걸 다 어디에 두었을지 상상만 해도 정신이 없다. 좁은 가게에 화분만 잔뜩 있으면 사실 손님들이 앉을 자리도 좁아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 정작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꽃보다는 실용적인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사람들은 축하의 증표로 난을 고집한다. 이건 그냥 습관 같은 걸까.
물 주는 것도 눈치가 보일 때
사무실 구석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려고 물뿌리개를 들고 있으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이게 내 업무도 아닌데 굳이 내가 나서서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겠다고 물을 주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잎이 말라가는 꼴을 보는 게 영 찜찜하다. 어제는 물을 주다가 잎사귀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는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어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서울 난원 어딘가에서 왔을 이 화분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승진의 기쁨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주 물을 줘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관리가 쉬운 식물이었다면
스투키나 산세베리아처럼 가끔 물을 줘도 잘 죽지 않는 식물이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왜 하필 다들 난을 보내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뭐, 그렇다고 내가 화분을 버릴 수는 없으니 일단은 물을 주고 있다. 나중에 이 화분이 다 시들어버리면, 그때는 화분만 따로 내놓아야 할지 아니면 꽃집에 다시 가져다줘야 할지 고민이다. 물론 버리는 게 제일 편하겠지만,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또 그게 쉽지 않겠지. 그냥 당분간은 창가에 잘 두는 수밖에 없겠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오늘따라 유독 화분 흙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내일 출근해서 잎이 좀 더 펴져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동양란의 잎이 위로 뻗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뉴스에서 본 이봉원 씨의 사례가 계속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