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골목에서 산 꽃다발이 결국 파스타 병에 꽂히기까지

합정동 골목에서 산 꽃다발이 결국 파스타 병에 꽂히기까지

갑자기 꽃을 사야 했던 합정동에서의 오후

아내의 작은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에 꽃을 자주 사는 편이 아니라서 어디서 사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충 인터넷에 가까운꽃집을 검색해 봤는데, 광고 글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골라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냥 지하철역에서 대충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전시회꽃다발인데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봐 골목 안쪽에 있는 ‘정원주의 방’이라는 작은 가게로 향했다. 합정역 5번 출구에서 나와서 한 10분쯤 걷다 보니 골목 모퉁이에 겨우 보이는 간판이 있었다. 간판이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요즘 꽃집들은 왜 이렇게 간판을 알아보기 힘들게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들어가니 향긋한 냄새보다는 약간 축축한 흙 냄새와 가위질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주인분은 손님을 보고도 그리 살갑게 맞이하지는 않았고, 어떤 용도인지 툭 던지듯 물어보셨다. 전시회에 가져갈 거라고 하니 대충 가격대를 고르라고 했다.

지하철역 꽃집과 골목 안쪽 꽃집의 미묘한 가격 차이

예산은 대략 5만 원 선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주인분이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를 보니 그 가격대로는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조금 더 풍성해 보이는 6만 5천 원짜리 구성을 선택했다. 예전에 지나가다 본 지하철 역사 내 꽃집에서는 3만 원이면 꽤 커 보이는 장미 꽃다발을 팔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이런 개인 꽃집은 꽃 종류가 다양하긴 해도 가격이 조금 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카네이션이나 장미 말고도 이름 모를 수입 꽃들이 섞여 있어서 그렇다는데, 솔직히 나 같은 일반인 눈에는 그냥 조금 특이한 풀때기가 섞여 있는 정도로만 보였다. 그래도 아내가 이런 은은한 색감을 좋아하니 괜찮겠지 하며 지갑을 열었다. 결제를 하고 나니 사장님이 그때부터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 미리 만들어둔 게 아니라 주문을 받으면 새로 조합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주문하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어색했다

꽃을 고르고 포장을 시작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무려 25분이나 걸렸다. 좁은 매장 구석에 서서 핸드폰이나 뒤적거리며 기다리는데, 꽃 가위질 소리와 꽃대 꺾이는 소리만 가득한 공간이 꽤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예약하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장님은 아주 신중하게 꽃의 높낮이를 맞추고 있었지만, 보는 내 입장에서는 ‘저 꽃을 저기 꽂으나 여기 꽂으나 큰 차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침내 완성된 꽃다발은 예쁘긴 했다. 연한 살구색 장미와 무슨 보라색 들꽃 같은 것이 섞여 있었는데, 종이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 있어서 꽤 묵직했다. 들고 나갈 때 가져가기 편하게 비닐 쇼핑백에 담아주었는데, 그 쇼핑백마저 꽤 커서 들고 걷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포장지를 뜯어내고 나니 남는 애매한 문제들

전시회장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건넸을 때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내는 색감이 마음에 든다며 좋아했고, 전시 테이블 한쪽에 올려두니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는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쇼핑백에 담겨 있긴 했지만,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느라 온 신경이 쓰였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꽃다발 밑부분에 수분 처리를 해둔 물주머니에서 물이 찔끔 흘러나와 쇼핑백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포장지를 풀자마자 물 고인 냄새와 짓눌린 잎사귀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이 예쁜 포장지를 그냥 다 뜯어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까우면서도, 그대로 두면 꽃이 하루 만에 시들 테니 어쩔 수 없었다. 리본끈과 철사를 하나하나 푸는 작업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귀찮았다.

결국 서랍 구석에서 꺼낸 안 쓰던 유리병

꽃을 꽂아둘 예쁜꽃병이 마땅치 않았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도자기 화병은 주둥이가 너무 좁아서 이 뭉텅이 꽃들이 다 들어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스 마시고 씻어둔 빈 병에 꽂자니 분위기가 전혀 살지 않았다. 결국 싱크대 상부장 깊숙한 곳에서 예전에 파스타 소스를 담아두었던 넓적한 유리병을 꺼내 대충 씻어 썼다. 꽃줄기 끝을 사선으로 잘라야 물을 잘 흡수한다는 어디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부엌칼로 대충 서걱서걱 잘라내 병에 꽂았다. 포장되어 있을 때는 그렇게 풍성하고 화려해 보이던 꽃들이, 넓은 유리병에 대충 꽂아놓고 보니 사방으로 풀 죽은 듯이 벌어져서 어딘가 엉성해 보였다. 아내는 옆에서 보더니 이것도 나름의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며 위로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시골 길가에 대충 꽂아둔 풀더미 같았다.

다음에는 그냥 식물을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며칠이 지나니 거실 테이블 위는 떨어지는 꽃가루와 시든 잎사귀들로 지저분해졌다. 물을 매일 갈아줘야 한다는데 바쁘다 보니 이틀에 한 번 갈아주기도 벅찼다. 꽃잎 끝이 갈색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6만 5천 원이라는 돈이 며칠짜리 기쁨을 위해 쓰인 것치고는 참 덧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옥상화분이나 작은 반려식물을 샀다면 관리하기가 더 편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꽃다발이 주는 그 순간의 화사함과 설렘은 식물 화분이 따라갈 수 없겠지만, 뒤처리가 귀찮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꽃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약간의 부채감처럼 느껴진다. 매일 조금씩 시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구석이 있다. 다음 기념일에는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지만, 일단 거실에 꽂혀 있는 저 반쯤 시든 장미들을 언제 정리해야 할지 눈치만 보고 있다.

댓글 4
  • 흙 냄새 맡으니, 꽃이 시들수록 그런 냄새가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 꽃잎이 시들시들 할 때마다, 옥상화분에 키우는 식물이 더 좋을 것 같아요.

  • 꽃이 파스타 병에 들어갔다는 게 좀 엉뚱하네요! 물 빠져서 잎사귀 냄새까지 나니 더 안타깝네요.

  • 파스타 소스 냄새가 아직 남아있네. 꽤 오래된 병을 쓴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