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니 안개꽃만 덩그러니 남았다

집에 돌아오니 안개꽃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쩌다 보니 내 손에 들려있던 한 다발

며칠 전 길을 걷다가 문득 꽃집 앞에 멈춰 섰다. 원래 꽃을 그렇게 즐겨 사는 편은 아니다. 왠지 금방 시들어버리는 생명체를 돈 주고 산다는 게 실용적인 성격인 나에게는 늘 조금 망설여지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가게 앞에 쌓여 있던 안개꽃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가게 사장님이 5만 원 정도면 꽤 풍성하게 묶어줄 수 있다고 해서 홀린 듯이 결제했다. 안개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프리지아처럼 향기가 강한 것도 아니다. 그냥 조용히 다른 꽃들을 받쳐주는 조연 같은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한 아름 안고 걸으니 느낌이 달랐다. 투명한 비닐에 싸인 안개꽃 뭉치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 틈에서 이 꽃이 혹여나 구겨질까 봐 계속 품 안으로 끌어당겼던 기억이 난다.

화병을 찾는 과정의 번거로움

집에 와서 보니 당장 꽃을 꽂아둘 만한 적당한 화병이 없었다. 급한 대로 집에 있던 긴 유리컵에 물을 채우고 꽂아두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줄기가 생각보다 가늘어서 물 위에서 자꾸 한쪽으로 쏠렸다. 예전에 꽃무드등 같은 걸 사본 적은 있는데, 생화를 직접 다루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물을 매일 갈아줘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게 참 귀찮은 일이었다. 이틀쯤 지나니 벌써 몇 송이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침에 물을 갈아줄 때는 괜찮았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거실 바닥에 마른 꽃잎이 한두 개씩 떨어져 있는 걸 보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다. 이런 걸 보면 프로포즈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꽃 하나 관리하는 것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데, 하물며 중요한 날을 위해 꽃다발과 프로포즈 케이크, 편지까지 챙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안개꽃의 풍경

안개꽃은 참 이상한 꽃이다. 처음 사 왔을 때의 그 몽글몽글하고 풋풋한 느낌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바삭하게 마른 종이처럼 변해간다. 생화였을 때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 느꼈던 그 애틋함이 조금씩 무뎌지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어제는 화병 옆을 지나가다가 무심코 줄기를 건드렸더니, 바짝 마른 안개꽃 송이들이 눈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가 떠올랐다. 영케이가 불렀던 안개꽃이라는 곡이었나. 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차분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꽃을 사 오던 날의 설렘과 지금 거실 구석에서 말라가는 이 꽃 사이의 간극이 묘하게 느껴졌다.

관리가 귀찮아지면서 드는 생각들

사실 꽃을 보면서 매번 예쁘다고 생각하기엔 현실적인 피로감이 있다. 가끔은 예쁜 꽃화병을 하나 더 살까 싶다가도, 결국엔 또 시들어 버릴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결정을 미루게 된다. 차라리 요즘 유행하는 유리로 만든 꽃 같은 걸 사두면 관리는 훨씬 편하겠지. 하지만 꽃잎이 마르면서 나는 그 특유의 텁텁한 냄새마저도 생화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라, 이걸 바로 쓰레기통에 넣기엔 또 마음이 걸린다. 원테이블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갔을 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작은 꽃병은 참 예뻐 보였는데, 내가 직접 챙기려니 그 정성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사실만 자꾸 깨닫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을 샀던 그 순간의 내가 좀 낭만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갑자기 꽃이 사고 싶을 만큼 일상이 조금은 메말라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거실에 마른 꽃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으니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왜인지 바로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두게 된다. 사실 이 꽃을 왜 샀는지,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지하철에서 조심스럽게 안고 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5만 원이라는 돈이 꽃 몇 송이로 변해 한 주를 버티고 사라지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느릿해서 그게 자꾸 내 눈길을 끄는 것 같다. 어쩌면 안개꽃은 화려한 주인공보다 이렇게 스스로 사라져가는 시간을 곁에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제는 거의 다 말라버린 안개꽃을 보며, 다음번에도 또 꽃집 앞을 지나가게 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멈출 수 있을까. 아마도 그때는 오늘처럼 꽃잎이 떨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바로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는 이런 번거로운 고민을 다시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해결되지 않은 채 거실 한구석에 놓인 이 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사실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댓글 1
  • 생화 관리 진짜 힘들죠. 저는 꽃 시들 때마다 괜히 죄책감 느껴서 더 자주 갈아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