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념일 준비가 생각보다 번거로웠던 이유
결혼기념일이라고 거창한 걸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매번 꽃만 사다 주다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게 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좀 해봤다. 사실 요즘은 무슨 테마카페니 실내 놀거리니 해서 웬만한 건 다 예약제로 돌아가더라. 강남 근처에 있는 오르골 제작 공방을 하나 찾았는데, 비용이 한 5만 원에서 8만 원 사이였다.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예약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꽃도 챙겨야 하고, 요즘 유행한다는 프리저브드 플라워도 고민이 됐다. 생화는 금방 시드니까 관리하기 귀찮아할 것 같고, 그렇다고 조화는 너무 정 없어 보여서 중간 지점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꽃 도매 시장까지 가서 사 올 엄두는 안 나서 그냥 온라인으로 적당한 걸 주문했는데, 택배 박스 뜯을 때 그 특유의 구겨진 느낌이 좀 신경 쓰였다.
오르골 공방에서의 예상치 못한 집중력
막상 공방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내부가 좁고 복잡했다. 오르골 안에 들어갈 노래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팝송 위주라 내가 아는 노래가 별로 없었는데, 그나마 익숙한 멜로디 하나를 골랐다. 조립은 생각보다 더 미세한 작업이었다. 핀셋으로 부품을 집어서 끼워 넣는데, 손이 떨려서 두 번이나 떨어뜨렸다.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들은 벌써 예쁘게 꾸미고 있길래 괜히 조급해졌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나. 다 만들고 나서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는 솔직히 조금 감동했다. 근데 막상 집에 가져가려니 이 작은 걸 어디다 둬야 할지, 먼지는 어떻게 털어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예쁘긴 한데 실용성 면에서는 글쎄, 그냥 기념품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다이소에서 산 편지지가 주는 묘한 압박감
선물을 준비하고 나니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바로 편지였다. 평소에 손글씨를 잘 안 쓰다 보니 편지지 고르는 게 제일 큰 숙제였다. 예전에는 펜의 번짐이나 종이 질감을 꽤 따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근처 문구점이나 다이소에 가서 제일 무난한 걸 집어온다. 1,000원짜리 편지지 세트가 거기서 거기지 싶어서 대충 골랐는데, 막상 집에 와서 펼쳐놓고 보니 펜 끝에서 느껴지는 그 종이의 거친 질감이 너무 낯설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글을 적겠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으면서도, 막상 빈 공간을 마주하면 마음이 작아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칠판 앞에 서서 글씨 쓸 때의 그 긴장감이 편지지 위에서도 느껴진달까. 삐뚤어지지 않게 써보려다가 오히려 글자 모양이 더 어색해져서 두 번이나 종이를 구겼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투명 케이스 안에 넣어두니 확실히 생화보다 깔끔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편지지에 적힌 내 글씨를 보니까 뭔가 꽃의 화려함이랑은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차라리 그냥 용돈 박스를 사서 거기에 현금을 좀 넣고 짧게 카드 하나 꽂아두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부의 날이나 기념일 때마다 챙기는 이 과정이 어떤 때는 의무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이렇게라도 안 하면 우리가 너무 무미건조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어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딥퍼플 컬러의 편지지를 골랐는데, 막상 적고 나니 잉크가 번져서 뒷면까지 배어 나왔다. 뭐, 정성만 들어가면 된 거겠지.
결국은 끝내지 못한 고민
오르골은 선반 구석에 올려뒀고,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식탁 위에 두었다. 편지는 건넸지만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기가 쑥스러워서 그냥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에는 그냥 밥이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퉁치는 게 서로에게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막상 날짜가 다가오면 또 꽃집을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이게 그냥 습관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뭘 해주고 싶어 하는 건지 가끔은 헷갈린다. 편지지에 담긴 내 진심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됐을지, 아니면 그냥 종이 뭉치 하나로 남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다음번에는 좀 더 빳빳한 종이로 된 편지지를 골라야겠다는 아주 사소한 결심만 남았다.
프리저브드 플라워 케이스에 넣으니까 확실히 깔끔하긴 하네요. 저도 꽃 선물할 때, 받는 사람이 뭘 좋아할지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프리저브드 플라워 케이스에 담아도 투명하긴 하네요. 보통 이런 선물 준비할 때, 받는 분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지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아서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르골 만드는 데 시간 투자하느라 편지 신경 쓰기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도 손 잘 떠나서 글씨 쓰기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