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한다발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의 기분

안개꽃 한다발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의 기분

뜬금없이 안개꽃이 사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 문득 꽃집 앞에 멈춰 섰다. 무슨 기념일도 아니고 누구한테 선물할 일도 없는데, 그냥 연보랏빛으로 물든 안개꽃이 눈에 띄었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마음이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차분하게 가라앉혀줄 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꽃다발이라고 하면 화려한 장미나 거창한 포장이 먼저 생각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투박하게 뭉쳐진 안개꽃이 더 마음이 갔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 단에 1만 5천 원 정도 한다길래 생각보다 저렴해서 바로 달라고 했다.

집으로 가져오는 길의 묘한 무게감

꽃집 사장님이 신문지에 대충 돌돌 말아 건네준 안개꽃을 들고 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서 꽃이 찌그러지지 않게 품에 꼭 안고 있었는데, 그게 꼭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워졌다. 집에 도착해서 물에 꽂아두려고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일반적인 화병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주방 찬장에 처박혀 있던 투명한 유리병 두 개를 꺼내서 나눠 담았다. 이 과정이 뭐라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15분 정도 걸렸나. 꽃 줄기를 가위로 자르고 물 높이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영케이의 노래를 들으며 물을 갈아준다

안개꽃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우연히 들었던 데이식스 영케이의 ‘안개꽃’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가사가 참 좋아서 한참을 반복해서 들었었는데, 그 노래가 생각나서 꽃 근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냥 물 갈아주고, 시든 잎을 떼어내고. 사실 나는 꽃을 사면 일주일도 못 가서 다 말려버리거나 시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7만 원 정도 하는 큰 꽃다발을 사서 누군가에게 주기도 했었는데, 막상 내 방에 두려고 산 1만 5천 원짜리 꽃이 주는 만족감이 더 크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했다.

식탁 위의 작은 풍경

지금 내 식탁 위에는 어제 사 온 안개꽃이 놓여 있다. 한 번씩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사실 그게 생각보다 번거롭다. 줄기 끝을 살짝 잘라내야 물을 더 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는 어제부터 꼬박꼬박 챙기고는 있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끔은 그냥 다 치워버리고 싶은 귀찮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꽃을 치우고 빈 식탁을 보면 다시 허전할 것 같아서, 그냥 며칠 더 두고 보기로 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시작된 일이라서 그런지 끝도 딱히 정해두지 않았다.

여전히 조금은 모호한 마음

사람들은 보통 꽃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한다. 나도 꽃을 볼 때면 잠시 마음이 몽글해지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관리의 피로함이나, 결국 시들어버린 꽃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때의 씁쓸함 같은 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안개꽃은 장미처럼 화려하게 지는 게 아니라 점점 말라가며 그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오늘 밤에도 다시 영케이의 노래를 틀어두고 가만히 꽃을 쳐다보고 있다. 딱히 무언가 대단한 위로를 받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 상황이 싫지는 않다. 내일은 물을 갈아줄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둘지 지금도 고민이다.

댓글 3
  • 밤에 꽃만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 어제 꽃을 받은 뒤로, 물 주는 게 그렇게 신경 쓰이던데. 유리병에 담아놓으니 훨씬 안정적이네요.

  • 꽃을 돌보면서, 영케이 노래처럼 가끔은 그냥 놓아버리고 싶다는 느낌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