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사게 된 엽서북
얼마 전인가, 문구점에 갔다가 홀린 듯이 엽서북을 하나 샀다. 가격은 2만 5천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예쁜 꽃 그림이 가득 담긴 일러스트 엽서북이었는데, 처음엔 그냥 꽂아두기만 해도 인테리어 효과가 있겠다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40대 중반쯤 되니까 누구한테 손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연애할 때는 뽀뽀라는 단어를 여백에 수십 번씩 적어가며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카톡 메시지 한 줄 보내는 게 전부니까. 그래도 이상하게 그 엽서북을 보고 있으니까, 예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랐다.
엽서북을 펴놓고 멍하니 보낸 시간
주말 오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엽서북을 한 장씩 넘겨봤다. 그런데 막상 쓰려니 막막했다. 그냥 아무 글도 적지 않고 엽서로만 선물하기엔 너무 성의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감동을 주는 글을 쓰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결국 첫 장에 그냥 ‘고맙다’는 말만 적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요즘 사람들은 편지지를 사서 꾹꾹 눌러쓰는 노력을 너무 안 하는 것 같다. 나조차도 그렇다. 굳이 펜을 찾아서 종이 위에 생각을 옮기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을까 싶기도 하고.
소방관에게 보낸 아이들의 편지가 떠오른 이유
어디선가 유치원생들이 소방관 아저씨들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고맙다고 편지를 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사진 속 편지지가 참 투박했는데, 아이들의 진심은 참 크게 느껴졌다. 엽서북을 넘기다 보니 나도 괜히 누군가에게 아주 짧게라도 안부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20주년이 다가오는 남편에게, 아니면 가끔 연락하는 친구에게. 그런데 막상 적으려니 또 망설여진다.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괜히 오글거리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어설픈 문장들이 쌓여가는 저녁
결국 몇 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떤 건 내용이 너무 길어서 엽서 한 장에 다 안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건 너무 건조해서 편지라기보다 안내문 같았다. 이중섭 화가가 가족에게 보냈던 그 절절한 편지들처럼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내 마음이 담긴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엽서북 가격이 2만 5천 원이었는데, 이 안에 든 엽서를 다 쓰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한 장에 천 원꼴이라고 생각하면 좀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전시용으로 남겨둘까 싶다가도 그러면 또 엽서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서랍장에 남은 고민
지금 이 엽서북은 다시 서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줄 적당한 기회가 오면 꺼내야지 생각하지만, 그 ‘적당한 기회’라는 게 참 오지 않는다. 부모님 생신 때 써볼까 싶다가도, 막상 당일이 되면 꽃다발이랑 현금 봉투 챙기느라 바빠서 편지지는 뒷전이 되곤 한다. 40대가 되니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편지를 쓰는 것도 모든 게 다 형식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서 가끔은 씁쓸하다. 다음 달에 친구 생일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이 엽서북을 한 장이라도 써서 건네줄 수 있을까. 써놓고도 안 줄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또 일주일이 지났다.
이전에 썼던 글과 지금의 고민이 비슷하네요. 40대가 되니 형식적인 느낌이 드는 게 저도 느껴요.
아이들의 편지글씨가 투박한 게, 어쩌면 더 진실 같았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