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바게뜨 대신 굳이 인스타그램으로 디자인을 고르던 시간
매번 돌아오는 와이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벤트 때마다 뭘 준비해야 할지 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예전에는 그냥 퇴근길에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같은 집 앞 빵집에 들러 적당한 생크림 케이크를 사 가곤 했다. 그 정도만 해도 초 불고 분위기를 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애 시절 생각이 나기도 하고, SNS에서 하도 알록달록하고 예쁜 주문 제작 케이크들이 많이 보이길래 나도 한번 특별한 걸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냥 200일선물이나 3주년케이크 같은 걸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부모님 생신선물이나 마니또선물용으로도 많이들 찾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생일케익추천 글을 한참 뒤지다가 결국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미 예상외의 번거로움이 시작되었다. 매장마다 예약 방식이 제각각이었고, 디엠은 받지 않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추가해서 주문 양식을 일일이 작성해야 했다. 시트 종류는 초코로 할지 바닐라로 할지, 크림치즈는 넣을지 말지, 겉면의 배경 색상과 글씨체는 어떻게 할지 선택해야 하는 항목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팠다. 그냥 맛있는케이크 하나 편하게 사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시작부터 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연남동 골목 2층 매장까지 찾아가서 케이크를 픽업하던 순간
내가 예약한 곳은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경의선 숲길을 따라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야 나오는 연남동 골목길 2층의 ‘크림하우스’라는 작은 케이크 공방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가 아예 불가능한 좁은 골목이었고, 차를 가져갔다가는 꼼짝없이 길에 갇힐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갔다. 예약 시간인 오후 3시에 맞춰 땀을 흘리며 매장에 들어섰는데, 사장님이 앞선 주문들의 크림 짜는 작업이 조금 딜레이되었다며 15분 정도만 안에서 대기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셨다. 좁은 대기 공간에 멍하니 서서 매장 내부를 구경했다. 벽면에는 다른 사람들이 주문해 놓은 아기자기한 도시락레터링케이크들과 아기 돌잔치용으로 보이는 2단 케이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요즘은 이런 걸 공방체험 삼아 직접 커플들이 만들러 오기도 한다는데, 손재주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냥 이렇게 돈을 내고 기다리는 편이 백번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비싸게 느껴졌던 제작 비용과 맛에 대한 의문
1호 사이즈의 가장 기본 디자인으로 주문했음에도 가격은 4만 8천 원이었다. 일반 브랜드 빵집에서 파는 2만 원대 케이크에 비하면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라 카드를 내밀면서 속으로 조금 쓰라렸다. 게다가 맛을 변경하거나 색상을 추가할 때마다 몇 천 원씩 추가금이 붙는 구조여서, 최종적으로 5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결제하게 되었다. 과연 이 조그만 빵 덩어리에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으로 볼 때는 마냥 예쁘기만 했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겉면에 바른 크림치즈와 식용 색소의 냄새가 묘하게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사장님이 케이크 상자를 보여주며 글씨 오타가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셨을 때, 내가 보낸 허접한 손그림 시안보다는 훨씬 깔끔하게 나와서 안도하긴 했지만, 맛에 대한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상자가 흔들릴 때마다 올라오던 식은땀
픽업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진짜 고역이었다. 날씨는 낮 기온이 꽤 올라가 더운 편이었는데, 사장님이 크림치즈와 버터로 만든 케이크라 실온에 오래 방치하면 크림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보냉백을 추가하긴 했지만 지하철 안의 후끈한 열기 속에서 온전히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주말 오후의 지하철 2호선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혹여나 케이크 상자가 다른 사람의 가방이나 외투에 부딪혀 찌그러질까 봐, 한 손으로 손잡이를 꼭 쥐고 다른 손으로는 상자 주변을 방어하듯 감싸 쥐었다. 열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상자 안에서 케이크가 이리저리 쏠리는 느낌이 들 때마다 식은땀이 등에 흘렀다. 그냥 동네 빵집에서 편하게 들고 올 수 있는 걸 사 갈 걸, 굳이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예쁘긴 한데 크림을 걷어내고 먹어야 했던 저녁 식사
겨우 집에 도착해 냉장고 깊숙이 케이크를 넣어둔 뒤, 저녁에 와이프가 퇴근하고 나서야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마자 와이프는 탄성을 지르며 확실히 좋아했다. 자기 이름과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가 신기했는지, 휴대폰을 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수십 장 찍어댔다. 그 모습을 보며 낮에 지하철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조금은 미화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초를 끄고 케이크를 커팅해 맛을 보는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 예쁜 색감을 내기 위해 겉면에 아주 두껍게 발려 있는 크림치즈 맛이 너무 강하고 달아서, 첫 한 입은 맛있었지만 두 입째부터는 급격하게 느끼해졌다. 결국 우리는 겉면의 파란색과 분홍색 레터링 크림들을 포크로 대충 걷어내고, 안쪽에 있는 바닐라 시트와 생크림 부분만 조금씩 파먹다가 포기했다.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결국 우리가 맛있게 먹은 부분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와이프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다음에는 그냥 평범한 생크림 케이크나 과일 타르트 같은 걸로 사 오자며 웃었다. 나 역시 고생한 것에 비해 맛이 아쉬워 굳이 다음번에도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쳐 주문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 상자 안에서 땀방귀 좀 많이 났네요!
크림치즈 바르는 게 불안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특히 지하철에서 케이크가 움직이는 모습이 걱정되어서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