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꽃을 사려다 고민만 길어졌던 날

시들지 않는 꽃을 사려다 고민만 길어졌던 날

동네 꽃집에서 느꼈던 묘한 거리감

아내 생일이 다가오면 항상 마음이 바빠진다. 올해는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결국 꽃을 사기로 했다. 요즘 들어 자꾸 집안 화분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게 눈에 밟혀서였을까, 생화는 며칠 못 가고 시드는 게 아까워져서 이번엔 프리저브드 플라워 쪽으로 눈을 돌렸다. 퇴근길에 회사 근처 꽃집 몇 군데를 기웃거려 봤는데, 이게 생각보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더라. 작은 꽃다발 하나가 5만 원을 훌쩍 넘는데, 정작 내 눈에는 그렇게까지 화려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사장님은 안개꽃이랑 장미가 섞인 게 인기가 많다고 권해주시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꽃이라는 게 참 그렇다. 선물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의미를 담고 싶은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면 비닐 포장된 공산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그날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유리돔 안에 갇힌 꽃은 과연 예쁜 걸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보니 프리저브드 꽃무드등이라는 게 있더라. 유리돔 안에 꽃이 들어있고 조명까지 켤 수 있는 건데, 관리할 필요도 없고 반영구적이라니 실용적인 면에서는 괜찮아 보였다. 가격은 대략 4만 원에서 7만 원 사이. 그런데 사진으로 볼 때는 참 영롱하고 예쁜데, 실제로 받아보면 왠지 저렴한 느낌이 날까 봐 결제를 망설였다. 유리돔 안에 갇힌 안개꽃이라니, 이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꽃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가둬둔 것인지 잠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아내는 프리지아를 좋아한다고 언젠가 지나가듯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프리지아는 프리저브드 처리가 된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꽃 자체가 아니라 아내의 취향을 맞추는 건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100일 편지 대신 끄적여본 마음

꽃을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문구점에 들렀다. 예쁜 편지지를 한 권 샀는데, 사실 편지 쓰는 게 제일 어렵다. 100일 때나 연애할 때는 정말 정성스럽게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몇 줄 적다 보면 왜 이렇게 낯간지러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빽빽하게 채웠던 편지지가 이제는 몇 글자 적지 않아도 공간이 남는다. 꽃다발을 건네면서 같이 줄 생각인데, 편지지에 꽃 그림이라도 작게 그려 넣을까 싶다가 관뒀다. 내가 그리면 꽃이 아니라 웬 풀떼기처럼 보일 게 뻔해서 말이다. 꽃을 사는 비용이 5만 원이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할까 싶다가도, 그래도 생일인데 꽃 한 송이 없으면 너무 삭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안개꽃의 꽃말은 기억나는데 정작 중요한 건

안개꽃 꽃말이 ‘순수한 사랑’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닌데, 이런 건 꼭 찾아보게 된다.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이라는데, 이미 결혼한 지 꽤 된 우리 사이에는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하고. 아내랑 연애할 때는 김요한이라는 배구 선수가 방송에서 프리지아를 줬네 안개꽃을 줬네 하는 소리를 듣고 웃었는데, 정작 내 손에 들린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웃픈 상황이다. 그냥 동네 안양천 산책하다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거 보여주면서 퉁칠까 싶기도 하다. 거기는 입장료도 없고, 굳이 돈 들여서 시들 꽃을 사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지 않나. 하지만 막상 생일 당일이 되면 빈손으로 나가는 게 영 찜찜해서, 또다시 꽃집 앞을 서성일 내 모습이 그려진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데 결정이 어렵다

사실 꽃을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일 텐데, 자꾸 꽃이라는 ‘물건’에 집착하는 것 같다. 꽃다발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불만, 프리저브드 꽃무드등은 왠지 모를 가짜 같은 느낌. 이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아내는 아마 웃으면서 받아줄 거라는 걸 알지만, 내가 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선택을 못 하겠다는 게 문제다. 내일도 퇴근길에 꽃집 앞을 지나가게 될 텐데, 그때는 그냥 망설이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 중 그나마 괜찮은 걸 사야겠다. 너무 깊게 생각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번 생일이 지나고 나면 또 내년이 오겠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꽃을 고를 수 있을까.